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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篇

양희영(양희봉 친형님)


     어느 학도병의 체험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당시 짬짬이 기록해 두었던 누렇게 발해버린 노트와 희미해진 기억들을 되새기며 이 글을 적으려 하니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평생을 살다가기 마련이지만 나의 운명이 이렇게 기구하고 힘들게 될 줄이야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모악산(母岳山)과 황방산(黃房山)의 정기를 받아 비옥하고 비교적 풍요로운 전주 근교의 농촌에서, 그래도 선조(先祖)께서 이조 말경에 참판 벼슬까지 하셨다는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형제자매가 많고(5남4녀) 워낙 왜정 말 및 해방 후에 농촌의 어려운 살림과 사정으로 인해서 부모님께서 우리를 기르고 공부시키기 위하여 엄청 고생을 하고 계셨다.


  아버님께서는 기골이 장대하시고 힘이 장사이시며, 손재간 또한 매우 뛰어나셨으나 항상 소학교 밖에 다니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셨는지 그 어려운 중에서도 자식들을 모두 고등교육까지 받도록 뒷바라지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넉넉하지 못하나마 정말로 화목하고 평화스럽게 두려움 없이 푸른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과 같이 6·25사변이 일어나 나의 청춘과 이상은 물거품이 된 채 거의 2년간 심연(深淵)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고 일생동안 악몽에 시달리는 운명이 되었다.



  본 문


  전주농림학교 6학년으로 졸업을 7,8개월 앞둔 때였다. 나는 큰집 의철형과 다정히 학교에 다니며 즐겁게 공부하였다. 또한 의철형은 우리 종가의 장손으로 결혼한 지 몇 개월 되지 아니하여 더욱 즐거운 시절이기도 하였다.


  평화스럽던 이 땅에 1950년 6월 25일 미명에 북한 공산군이 불법 남침을 감행, 평온하고 자유스럽던 학창도 불안속에 어수선하게 지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세 불리로 갑자기 전교생 집합령이 내렸다. 우리도 각오한 참이었다. 19세 이상 신체 건강한 학생은 구국학도병으로 출전한다는 것이다. 전농 학도병도 이리 공업학교에 집결, 전북 학도대를 구성, 용약 멸공 전투에 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나를 비롯 양의철(전주농업학교 5학년), 이병은(전주농업학교 6학년), 이병기(전주북중학교 6학년), 최병오(전주공업 학교 6학년) 모두 다섯 명이 학도병으로서 같이 입대하게 되었다.


  마지막 작별을 나누고자 형님은 이곳까지 찾아 왔었다. 그때 UN기 두 대가 이리 상공을 돌고 그 중 한대는 공업학교 광장으로 저공비행을 하였다. 이에 놀란 나와 어린 학도병들은 고양이 앞에 쥐 달아나듯 이곳저곳으로 달아났다. 나는 무서워서 교문에 서 계시는 형님 곁으로 놀라 달아났다. 제트기가 사라진 뒤 나는 형님더러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하였다. 우리는 어차피 나라에 맡긴 몸, 이러한 불안하고 언짢은 모습을 오래 보고 있도록 하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도 아팠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말미암아 잠시 은폐했던 여러 명에게 군 선임하사는 광장에서 무섭게 기합을 주었고, 우리는 야구 방망이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두어 대씩 얻어맞았다.


  그때 공산군은 서울을 점령, 급속도로 남하 할 때였다. 우리 학도병은 임시 열차에 몸을 싣고 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전주역에 도착하여 상당한 시간을 정차하였는데 일체 가족을 상봉치 못하게 하는 헌병의 제지로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였다. 얼마 후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움직였다. 7월 13일 하오 3시 해는 서산에 기울어지고 폭양도 점점 식어 갈 무렵 서서히 고향을 멀리 하였다. 어둠이 깃들 무렵 서글픈 기적 소리와 함께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고 있었다. 남관역을 지나 경사가 심한 철로를 학도병과 많은 승객으로 초만원이 되어 힘이 부치었는지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결국 올라갔다. 어둡고 깜깜한 밤 남원역을 지나 기차는 그칠 사이 없이 남으로 남으로 향하였다. 여러 학도병은 고단하여 자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앞으로 전개 될 나의 운명 그리고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느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튿날 새벽 순천에 도착, 아침에 주먹밥 한 개씩을 받아먹었다. 순천 어느 학교에 들러 이삼일간 머물고 또한 학도병에 대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곳에서 불합격 맞은 사람은 귀향증을 해주어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졌으나 그중에 동네 친구는 한명도 끼지 않았다. 그나마 은연중에 위급한 국가 방위를 위하여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는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순천에서 이삼일 머무는 동안 북한 공산군은 대전을 지나 선발대는 이리에 당도하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그리하여 학도병은 순천을 떠나 2백 여리나 되는 경남 진주로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이다. 한여름 뭉게구름이 감돌고 있는 이때 우리보다 고향의 위태로움에 더욱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여 고향의 부모 형제자매의 무사함을 염원하였다. 적적하고 후덥지근한 남해안을 따라 부슬비를 맞으며 진주를 향하여 떠났다. 도중 하동 근처 어느 학교에서 주먹밥 한 개씩을 얻어먹고 축축한 옷을 입은 채 일박을 하고 다시 출발하였다. 때때로 공산군의 남침 상황을 엿들었으며, 오늘쯤은 전주를 지났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 고향의 부모 형제 사촌 등이 무사한지, 피난은 갔는지, 아니 북한 침략군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거나 고생을 하시지나 않는지 나 자신 보다 너무나 걱정이 되고 서글퍼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윽고 이틀간의 행군으로 아직은 평화스러운 진주에 도착 어느 학교에 집결하였다. 그곳의 교실에서 며칠동안 침식을 하던 중 학도병은 다시 중 소대 편성을 하였는데 우리 동네 친우들은 악착같이 모든 수단 방법을 다하여 한 부대 한 소대에 편성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마음속으로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맹세, 가로질러 이리 붙이고, 세로 끊어 저리 붙이는 중 소대 편성에서 우리는 기어코 한 소대 내에 전부 들게 되었다. 훈련 도중 중대 인솔로 촉석루 및 남강에 나가 고독을 풀기도 하였고 호주머니에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참외 수박을 사서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때로는 학교에서 얼마 안 떨어진 김수로 왕릉을 구경도 하고 근처 야산에서 군사 기초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7월말 경이었다. 북한 공산군은 어느새 경남 하동 근방까지 접근하여 아군과 교전하고 있고 일부 학도병도 참전하여 부상자가 많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가엾은 일이었다. 또한 영동 지방도 계속 후퇴하고 있다 하니 우리의 장래는 너무나도 암담하기만 하였다. 기초 훈련이 끝나자 일부는 대구로 이동, 대구에 있는 어느 학교에 들어가서 지내게 되었다. 위급하게 된 이곳 대구 시내도 어수선 하였고 많은 피난민이 눈에 띄었다. 가까운 학교에서는 중화기 교육을 받고 있었고 우리는 보병 부대로서 M1(엠원)소총을 가지고 맹훈련을 받게 되었다.


  이 무렵 전세 불리하여 우리 학도병들은 충분한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없게 되어 단지 사격 연습 1회로 끝났으며 우리는 어느 날 열차에 몸을 실어 일선에 나가게 되었다. 영천을 거쳐 의성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은 간간히 포성이 들려오더니 이내 완전히 전운에 감싸이고 말았다. 병은, 의철, 병기, 병호, 그리고 나는 악착같이 줄곧 같은 한 소대에 속하도록 하였다. 무서운 감은 느꼈으나 죽는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M1을 한정씩 걸머지고 16연대에 소속된 우리는 의성에서 약 8키로 지점에 있는 공산군과 싸우기 위하여 행군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병기형이 복통을 앓기 시작하여 당황하였으나 우리 형제들은 끝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하자는 눈물의 맹세를 하였기에 병기형을 교대로 업고 행군하여 낙오됨이 없이 힘을 다하여 그 행군을 완료 할 수 있었으며, 신은 우리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셔서 다행히도 곧 완쾌되었다. 우리는 그러한 와중에서도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삼일간 적도 보지 못하고 다만 심금을 찌르듯 야포 소리만 들리고 하늘에는 쌕쌕이와 무스탕 소리 우렁차고 L18 T6기 등은 북한군 상황 파악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쪽에서도 장거리포가 발사되어 우렁차게 진동하면 북쪽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리곤 하였다.

  8월초 어느 날 아군이 탈환한 고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석양이 드는 무렵부터 우리 대대가 계곡을 따라 고지에 오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몰래 고지에 진을 치고 있던 북한군이 조용한 초저녁의 정막을 깨뜨리며 일제히 집중 사격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오르고 있던 우리는 갑작스런 위협에 가슴을 졸이며 엎드렸다. 반격도 하지 못하였다. 불리한 입장에 있는 우리는 그들의 중화기, 소총의 총 공격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 전우들은 이곳저곳에서 적탄에 쓰러졌다. 원수를 갚지 못하고 쓰러지는 옆 전우를 볼 때 무한히 애석하였고, 적개심이 용솟음 쳤다. 아군은 그들의 철통같은 방어와 집중공격에 못 이겨 올라갔던 계곡을 따라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근 4키로는 후퇴 한 것 같았다. 흩어진 대대병력을 정리하고 있으니 이곳저곳에서 모여 들었다. 중 소대는 인원파악에 들어갔는데 흉탄에 쓰러진 전우 몇 명이 없었다. 우리는 애석함을 금치 못하고 전사한 전우의 명복을 기도하는 묵념을 하고 다시 작전상 후퇴하는 듯 의성 시내에 당도하여 좌우를 분별 못할 정도로 어두운 밤에 우리 부대는 어느 학교에 들어갔다. 불침번을 두고 고이 잠들 무렵 그러니까 밤 2시쯤이 되었을 때에 적이 총성도 요란하게 시내를 포위하여 침투 공격 해왔다. 거기에서 적과 전투 끝에 불리하여 시내를 빠져 동쪽으로 이동 행군하였다. 부락에는 모두 피난을 나가 사람 하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도로변에 있는 장거리포는 공산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하여 불을 뿜으며 북쪽을 향해 포탄을 연달아 발사하곤 하였다.


  우리 연대는 안강쪽으로 이동하던 중 산발적인 전투 이외 실질적인 교전은 한 번도 못하였다. 다만 근방에서 교전하는 총성만 가느다랗게 들려오고 있었다. 훈련과 전투 경험이 아주 부족한 나는 포성에 위험을 느꼈지만 며칠 교전을 아니 하고 보니 그들과 한번 교전해 봤으면 하는 생각도 났다. 어두운 이 고장에는 이따금 멍멍 짖어 대는 개만이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듯 적막하고 산천에는 꿩, 비둘기들이 이리 저리 나르고 있었고 총성에 놀란 산짐승도 간혹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한시가 급한 위기에도 우리 F51 무스탕전투기들은 적진지에 폭탄을 투하하여 일말의 희망을 주었다. 중과부족의 우리 국군은 눈물겹게도 그들에게 몰려 막다른 지점에 다다르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우리 정부는 남단에 있는 항구 부산에 옮겨지고 이제는 더 이상 후퇴할래야 할 자리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총 반격 할 때는 온 것 같다. 포항, 경주, 대구, 마산을 경계로 전투는 치열하였다. 북한군도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뻔한 일이다.


  8월 28일 심야였다. 근방에서 최고봉을 탈환한 아군은 고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우리 중대는 그 산봉우리 뒤쪽에 야전삽으로 참호를 파고 1개호에 2명씩 들어 있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담뿍 끼어 어두워서 앞에서 뺨을 때려도 모를 정도였다. 배치를 받은 뒤 중대 본부는 어디 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이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호 속 에서 총부리를 앞의 적을 향하여 겨누고 있었다. 이때 뜻밖에도 고요한 밤하늘을 요란스럽게 교란시키며 앞에서 적들이 일제히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야광 탄이 우리 호 위에서 펑펑 터지고 또 소나무 사이로 날아오고 경기관총 다발총 소리가 요동을 쳤다. 우리도 앞을 향해 마구 M1을 쏘아 댔다. 그런지 얼마 후 총소리가 멈췄다. 의철형, 병기, 병호는 나의 호로 몰려왔다. 우리는 오늘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총에 맞아 죽는 게 아닐까. 학창에서 그저 공부나 하고 세상모르고 지내다가 돌연히 겪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마음이 콩알 만해졌다. 우리는 조그마한 호에서 같이 있다가 각기 제 자리로 갔다. 29일 새벽에 배치된 능선 넘어에서 갑자기 만세 소리와 함께 나오라고 외치며 우리 앞에 수많은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우리는 완전히 죽음을 앞둔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말았다. 중대 본부는 우리만 남기고 미리 후퇴하고 말았던 것이다. 도저히 항거 불능한 우리는 결국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중대 본부에 있는 병은이만 빼놓고 모두 그들에게 끌려갔다. 그때 아군이 포로가 된 자 30여명, 그 무시무시한 팔로군은 우리를 뺑돌아 감시 그들의 사체 2, 3구를 몇이 들게 하여 그들의 후방에 끌려갔다. 가는 도중 그들 중에는 다 낡아빠진 훈련화하고 바꾸자고 하는 놈도 있었으나 나는 끝끝내 거절하였다. 우리들 포로는 안강에서 좀 떨어진 어느 산골에서 그들의 감시하에 있었다. 며칠 있다가 우리가 같이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 그들은 이리저리 분리하여 고립을 시키는 것이었다. 며칠 후 의철형이 다리에 중상을 입고 후방에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상처가 치명적인지 나을 수 있는지 알 수도 없이 그 말을 들은 나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갈수록 무섭기만 한 나 역시 친우들을 잃어 더욱 애닯기만 하였다. 전투를 치른 이곳도 말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부락마다 거의 반 이상이 소실되고 여기저기 가옥들은 그칠 새 없이 불타오르고 길가에는 죄 없는 선량한 피난민의 우왕좌왕하는 모습,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시체들의 모습은 정말 참혹하였고, 집 타는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산군은 파괴와 약탈 등의 무참한 짓을 감행하고 있었고, 남자는 무조건 노역 동원시키고 있는 것을 보았고, 피난민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을 찾아 조그마한 보따리를 걸머지고 줄지어서 슬피 애통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부락마다 파괴되고 가축은 모조리 공산군의 먹이가 되고 피난 갈 때 숨겨둔 양곡도 뒤져먹고 보따리에 싸 가곤 하였다. 공산군의 무수한 부상자는 민간인을 동원, 치료도 못한 채 가마니 들것에 싣고 후방에 나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늘 그들의 감시하에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이 불리한 상황임을 알았다. 그리고 길가에 뿌려진 삐라를 주어 보니 거기에는 미군이 인천 상륙을 했다는 반가운 말이 적혀 있었다. 그때가 9월 28일경이었다. 그들은 전투를 포기하고 패잔병으로 형성된 부대로서 매일 매일 후퇴하였다. 나와 여러 국군 포로들은 그들의 감시하에 연일 북으로 북으로 도보로 끌려갔는데 하루는 나의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영 걷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만약 그들 대열에서 낙오되면 무참히 죽게 된다는 생각이 앞서 울며 견디었다. 필경 발바닥에 깊이 고름이 잡혀 아픔은 말할 수 없고 손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치료약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들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심한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발바닥 깊이 곪은 고름이 불다 불다 못해 터졌다. 그리하여 많은 피고름이 나오더니 통증은 덜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다행히 아물어 졌다.


  충청북도 강원도를 거쳐서 며칠 후 평양을 밤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건물이나 시설물은 거의 불타거나 파괴되고 철도 인도교 할 것 없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후퇴 일로에 있는 북괴군은 대동강에 나무다리를 놓아 퇴각 하고 있었는데 시내에는 전등하나 없이 어두웠으나 간혹 호롱불이 비치는 듯 하였다. 우리가 그날 야간에 평양 복판을 지나 평안도 순천을 거쳐 개천 근방에 갔을 때 나와 같이 포로가 되어 헤어졌던 병호를 만났다. 우리는 비록 북쪽에 끌려간 포로의 신세였으나 매우 반가웠다. 서로 놀라 이름을 불렀고 짤막한 이야기 끝에 섭섭히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압록강에서 약 70리 떨어진 강계에 도착, 우리는 어느 산골 부락에서 멈추게 되고 거기에서 엄동을 맞게 되었다. 영하 15도가 오르내리는 그곳은 항상 산등성은 눈으로 새하얗고 계곡은 꽁꽁 얼어 있었다.


  산과 들에 덮인 하얀 눈을 밟으며 주야 그칠 새 없이 만주에서 넘어오는 중공군들을 목격하였으며, 그들은 말, 당나귀 등에 군수품을 싣거나 두부장수 모양 어깨에 메고 부랴부랴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이 가세, 인해 전술로 대항할 모양이다

나는 아군 전선이 어디까지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하였다. 엄동설한에 찬물로 세수하고 콩 찌개, 강냉이밥으로 연명하였으며, 담배마저 구할 수 없는 그곳에서 초엽으로 고독과 슬픔을 달래며 지새웠다.


  어느 날 북한군 부상병들을 전선에서 후방으로 후송 시키는 일을 포로들이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내가 살아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10여명의 낙오된 포로들은 두 명에 빈 들것 1개씩 들고 그들을 따라 어딘가로 떠났다. 아마도 전투 지구에 가는 것 같았다. 손발이 얼어 붙을 정도의 추위에 산악을 넘고 들을 지나 그들의 생활상도 볼 수 있었다. 탄광도 볼 수 있었으나 전시라 채굴하지 않고 있었다. 쓸쓸하게만 보였다.


  12월 30일 드디어 38선 근방에 온 것 같았다. 우리 환자 후송부대는 우거진 숲을 헤치며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겨우겨우 걸어서 38선을 넘었다. 남한 땅을 다시 밟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죽을 고생을 한 끝에 자유 대한 땅을 밟게 되니 살 것만 같았다. 낙오된 포로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형제들을 만나보고 싶은 심정이였을 것이다. 그러던 차 춘천에서 몇 십리 떨어진 어느 마을의 큰 도로변을 우리 10여 낙오병이 북한군 몇 명의 감시하에 가고 있었는데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어 그들로부터 빠져나올 꾀를 부렸다. 넓은 통로에서 아군의 진주를 기다리던 차 다행히도 미군 선발대가 나타났다. 우리는 재빨리 투항하였으며 북한 병사는 도망치다 총에 맞아 쓰러졌다. 설레는 마음에 우리들 낙오병은 사살되지나 안나 겁부터 먹었다. 제대로 통역할 만한 자가 우리들 가운데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행히 미군 부대 중 한국인 통역이 있었다. 그는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물었고 우리의 출신과 과거 행적을 간략히 미군 장교에게 전했다. 통역은 우리에게 원대복귀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않았나보다. 그 후 미군 쓰리 쿼터 트럭에 실려 충주에 있는 아군 본부에 가게 되어 거기서 1951년 정월 초하루를 맞이하였다. 대전에서 심사를 마친 후 원대복귀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원수 공산 침략군을 무찌를 기회가 다시 올 줄만 믿었다. 그러나 대전에 들리지 않고 기차에 실려 부산에 도착, 서면 포로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용소 내에는 많은 북한군 포로와 중공군 포로, 북한군 여군, 피난민, 남한 의용군 등 가지각색 이름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들로 우글거리고 옷들이 몸에 맞지 않으나 따뜻하게 입고 있었다. 간혹 완장을 두른 포로 자체 감찰도 눈에 띄었다. 우리도 담요, 서지(SERGE)로 된 군복, 식기 2개를 보급 반에서 타 가지고 천막으로 배치되었다. 잠자리로 가마니를 깔아둔 내무반에는 북한 남한 인이 뒤섞여 있었다. 나도 반원 명단에 올라갔다. 수용소 내에서도 군대 생활과 다름없이 조석으로 점호를 받았다. 낮에는 주위 환경 정리와 사역병으로 차출되어서 나가게 되었다. 식사는 반별 순으로 일렬로 서서 타는데 너 댓 군데서 분배하므로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을 찾느라 목을 길게 늘이며 이리저리 살펴보곤 하였다. 어느 줄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반면 분배하는 사람이 좀 낫게 퍼서 들고 있으면 눈치 빠른 이는 재빨리 그쪽으로 가기도 하였다. 이렇게 타 가지고 온 밥은 밥알 하나 남기지 않게 먹고 빈 그릇은 그날 당번이 식기를 씻게 되었다. 어떤 노인은 우비로 주머니를 만들어 기기에 밥을 받아들고 내무반에 들어와 내무반 바닥에 깔려 있는 가마니 밑에 주물러 비벼 조그마한 한 덩어리 떡을 만들어 게걸스럽게 먹는 일도 있었다. 떡을 먹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빨리 소화되는 것을 억제하여 허기를 참아볼까 하는 의도이다. 나도 한두 번 해 본적이 있다. 이틀 만에 ‘자유’라는 담배를 한 갑씩 타게 된다. 담배를 심하게 피는 분은 모자랄 정도며 피우지 않는 분은 영외 작업 나갈 때 먹을 것하고 바꾸든가 헐값에 돈하고 바꾼다. 영 내에도 약간의 한 화가 나돌게 되고 외부 물품도 약간씩 눈에 띄었다. 담배가 나오면 다들 좋아한다. 나온 담배로 담배내기 판이 벌어진다. 몽땅 잃은 사람은 피우다 만 것을 얻어 피우든가 떨어진 꽁초를 주어 피우기 일수다. 내무반에서 사역병을 모집하면 무슨 사역인가 물어 보고 미군부대라면 먼저 선발되어 가려고 노소불구 서로 다투고, 분뇨통을 맨다든가 산에 가서 흙일을 한다면 서로 꺼린다. 힘만 들고 득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군부대에 가면 하다못해 미군이 피우다만 담배꽁초라도 주워 향기 좋은 양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과 그들의 눈을 피하여 식당 쓰레기통을 뒤져 먹다만 고기 덩어리라도 뒤져 먹고 천막 앞의 쓰레기통을 뒤져 많은 꽁초와 쓸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이다. 대개 깡통 따개를 휴대하고 있어 깡통을 따보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버린다. 이 외에 제일 선호하는 작업은 부두 작업이다. 왜냐하면 부두에는 대개 미군의 야전식량인 통조림 상자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산적된 미군 식량이 이곳저곳에 덮개로 덮여있다. 화물선에서 작은 운반선을 이용 많은 식량을 나른다. 거기에는 야전용 레이숀 (C RATION) 및 크고 내용이 다양한 식당용 레이숀(A RATION)등 여러 가지가 있다. 수단과 눈치로 지내는 포로병들은 한국군 감시원과 미군의 눈을 피해 군데군데 쌓아둔 덮개 안에 들어가 통조림을 따개로 따서 고급 음식만 재빨리 목이 차도록 먹는 것이다. 거기에는 파인애플 , 쨈, 우유, 쇠고기 등이 있고 어떤 통에는 시계까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재수 없이 미군에게 걸리면 지독히 얻어맞고 또 영창에 들어간다. 그러나 한국군 감시원은 그들의 소행에 대하여 슬쩍 봐 주는 수도 많았다.


  부산 수용소에 있을 때는 분위기가 비교적 평온하였다. 몇 달 후 일부 포로는 연락선을 타고 거제도로 가게 되었다. 나도 그 중에 끼게 되었다. 거제도에 도착하여 수용소로 트럭에 실려 갔다. 상당히 넓은 지역에 철망이 쳐진 수용소가 즐비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간 수용소는 84수용소로 대부분 이남출신 의용군, 국군 낙오병, 북한 피난민으로 약 8천명이나 되었다. 1951년 3월 거제도에 온 후 수용소는 그런대로 평온한 가운데 근 1개월 열흘 지내고 있을 무렵 수용소 내는 험한 공기가 맴돌기 시작하였다. 우리 수용소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수용소 내에서 사상 분열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너도나도 포로의 간부가 되려고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철망 밖에서 작업시 북한 포로와 남한 포로 사이에 사상전이 벌어져 돌팔매질 또는 서로를 비방하는 욕설 등으로 시비가 벌어지곤 하였다. 9월중순경 국군 낙오병과 교인 등에서 유능한 분들이 비밀 회의를 가져 수용소 내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질서와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간부직의 권위를 유지하고 내무반의 반장을 확보하는 조직에 힘을 모았다. 그러나 살인 행위를 일삼는 공산주의 사상은 이 수용소에서 폭발되어 대대 본부 서기가 야간에 그들의 테러로 돌을 맞아 무참히 쓰러지고 며칠 후에는 취사반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을 도끼로 살인한 후 밥통에 넣어 엎어 놓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사상전은 날로 무시무시하게 번져 갔다. 이런 사건들은 모두 쥐도 새도 모르게 이루어졌으나 1일 2회에 걸친 점호로 그 진상이 드러났다. 이곳 84수용소는 대부분 남한인, 그 중에도 의용군이 대부분 북괴군 약간, 낙오병, 피난민 등으로 공산주의 신봉자가 태반이었다. 그들은 이런 사고를 계속 일으켜 주변 감시원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그에 따라 헌병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완전 무장을 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두렵지 않은 듯 전원 광장에 집합, 노래를 부르고 여러 가지 요구 조건을 부르짖으며 매일 농성을 하고 상투적인 욕설을 퍼부으며 온갖 발악을 다하고 있었다. 발악이 극에 달하자 불순분자 숙청이 단행되어 대상자를 색출하기 시작하였다. 국군 낙오병들을 첫 대상으로 하고 다음은 교인들을 숙청 대상으로 음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두 명이 아닌 국군 출신을 한꺼번에 없애버리기에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듯 하였다. 우리는 수시로 정문에 있는 헌병에 연락 우리들의 구출을 탄원하였다. 헌병들도 우리의 뜻을 수용소장에게 알렸고 그 후 돌발사고 방지를 위하여 감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느 날 우리들을 숙청 대상으로 색출하기 위하여 전 포로 8천 여명이 광장에 강제로 모이게 하여 북한 군가를 불러 수용소를 뒤흔들고 숙청의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어마어마한 광경이였고, 포로인 북한군 졸장부가 단에 올라가 한마디 하면 박수, 두마디하면 박수, 정말 허수아비 떼를 보듯 가관이었다. 그때였다. 주변 감시소에 설치되었던 중기관총이 수용소 안에 포로가 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방에서 연발 위협사격을 가하였고 정문에서는 완전 무장한 미군 국군 수백 명이 총검을 휴대하고 연막탄을 터뜨리며 유유히 수용소 내로 들어오지 않는가. 포로들은 그래도 자기 생명이 아까운 듯 모두 헤어져 각기 내무반에 도망쳐 쥐 소리도 없이 들어 있을 무렵 미군은 각 천막을 지키고 있었고 몇몇 국군은 각 천막에 산재해 있는 국군 낙오병들과 교인들을 색출, 광장에 인솔,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식기와 모포를 들고 모인 사람 무려 2,000여명이나 되었다. 이곳에서 국군 경비병들은 수고했다고 하며 담배도 주며 친절히 대해 주었다.


  국군 경비병이 말하기를 우리는 새로 만든 92수용소에 들게 된다고 하며 앞으로 남북인 할 것 없이 사상적으로 분할,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감시하에 열을 지어 새로 만들어진 92수용소에 들어갔다. 이 수용소는 야산을 불도저로 깎아 만들어 아직 바닥은 요철이 심하였고 천막도 임시로 쳐 있어서 우리 포로들은 할 일이 많았다. 각 천막에 분단별로 들어가게 된 후 먼저 잠자리를 정리하고 천막 주위의 배수로 파기를 하였다. 또한 수용소 내 간부급 서기 등을 편성하였는데 나는 감찰의 완장을 끼게 되었다. 감찰만 되더라도 사역은 면하게 되고 안남미 통일 밀밥 이나마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수개월 동안 수용소 미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높은 산에서 돌을 날라 변소 돌담을 쌓고 천막 주변 미화 작업도 하고 길도 깔끔히 정돈하였다. 포로로서 누군들 삶의 의욕이 있어 즐거움이 있었겠는가? 우리들의 걸음걸이는 능청맞을 대로 능청맞았고 능구렁이 같이 행동하였다. 거기에다 포로 간부 외에는 입고 있는 옷이 제대로 맞지도 아니하여 우습기도 하고 조그마한 발에 큰 미군 워커를 신고 걷게 되니 어색하고 초라하기 말할 수가 없었다.


  남한의 자유와 북한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사상별로 구분 수용한 후에는 투쟁은 없어지고 남한을 선호하는 포로수용소에서는 국군식의 생활 교육과 훈련을 하고 태극기와 UN기를 게양하였으며, 북한을 선호하는 포로수용소에서는 북한기를 게양하고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는 중화민국 국기를 게양해 놓았다. 밤낮없이 대한민국 군가와 북한 군가로 대항하며 거제도가 떠나갈 정도로 구호를 서로 외쳐 목이 메었다.

중공군도 상당한 수의 포로가 여러 막사에 수용되어 있었다. 그들의 천막 옆을 지나칠 때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보았는데 미화 작업이나 규율 등 우리 한국인 수용소 보다 월등히 나은 것 같았다. 대다수 자유 중국기를 게양 하고 공산당을 배격하는 글도 쓰여져 있었다. 그것만 봐도 그들 또한 강제징집 당한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인 포로들처럼 그렇게 심하게 서로 싸우지 않는 것만 같았다. 나는 92수용소 및 96수용소에서 몇 개월 지내다 어느 수용소인지 확실히 기억 못하지만 아마도 78수용소에 옮겨졌다. 이 수용소 역시 모두 남한 출신의 수용소로서 온화한 분위기였다. 이 때만 하더라도 일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매일 수용소에 포로가 늘어가고 있을 때였다. 76북한군 포로수용소는 갖은 발악을 다하며 노래 부르고 그들과 배짱이 맞는 수용소 끼리 서로 수기로 연락을 하고 철망 밑에 굴을 파서 비밀리에 왕래 한 것이 발각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포로 취급에 관한 제네바 협정을 내세워 식사 의류 등 턱없는 요구 조건을 내걸고 밤낮 없이 무섭게 횡포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심지어는 거제도 포로 수용소장인 미군 장군이 직접 64수용소에 들어가 만류하다가 포로들에게 포로가 되어버렸다. 즉각 미군이 들어가 소장 구출을 시도 하였으나 북한군 포로들이 납치된 소장을 가해하려는 위협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삼일간 잡혀 있다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풀려 나왔다고 하였다. 주간 잡지를 통하여 사회상 및 전선 현황을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고 정전 회담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휴전 후 있을지 모를 강제 송환에 반대하기 위하여 모두 마음을 합하여 총 궐기하였고 북송 반대 투쟁위를 구성, 손가락 열 개가 하나도 성하지 못할 정도로 피를 뽑아 혈서로서 UN군 총사령부 및 이 대통령 앞으로 진정서를 내고 동시에 그칠 줄 모르게 주야로 석방을 바라는 궐기대회를 하였다. 비록 배는 굶주리고 힘은 없었으나 우리의 운명이 곧 결정이 될 판이므로 우리의 의도가 관철되도록 용기 백배 죽을 힘을 다하였다. 그 후 수용소는 일제히 외딴 천막에서 비밀 심사, 즉 개개인의 의사를 묻게 되었다. 천막 안에서 자기 말 한마디로 자유 대한에 떨어지느냐 공산 북한에 넘어가느냐 하는 판가름이 날판이다. 밖에서는 화물차 모양의 길다란 트럭이 대기하여 가끔 나오는 북한 희망자를 50명이 되면 싣고 떠나 수용소에 부릴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북한 동포가 자유의 땅에 남겠다고 하였다. 개개인의 의사를 받아드리어 완전 분리되었다. 16만이나 되는 많은 포로 중 대부분이 자유를 원하였다. 1952년 5월 5일 이 대통령 독단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였다. 1차 2차 여러 차례로 나눠 철조망 울타리에서 풀려 나왔다.


  수용소에서 풀려나온 나는 그리던 고향에 간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 기쁨이야 어찌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북한 공산 포로도 석방되고 허다한 중공군도 자유 중국 대만으로 간다는 것이다. 자유 대한을 선택한 우리는 연락선에 몸이 실리어 부산항에 다시 기차로 이리역에 도착, 전주 경찰서에서 나온 트럭이 우리를 싣고 갔다. 동산촌을 지나 용산 다리를 오르니 그렇게도 그립던 우리 동네의 정자가 보였다. 아래 뒷거리에서 친척동생을 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놀라 마구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돌  아와 부모님 및 형제와 자매 모두 얼싸안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 고향의 모습 여전하고 같이 갔던 친우들 다 돌아와 있었으나 의철형만 생사를 아직도 알지 못한 채 오늘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다.



  에 필 로 그


  의철형은 우리 집안의 종손으로 할머니께서 청상과부가 되신 후 90살이 넘도록 장수 하시며 매일 같이 창호지문에 있는 작은 유리창(쇳경)을 통하여 대문을 바라보시며 기다리시다가 끝끝내 돌아오는 손자를 못 보시고 떠나셨으며, 이어 큰어머님께서도 88세의 고령까지 굽어진 허리로 늘 절에 가셔 불공을 드리며 큰 자식의 귀환을 학수고대 하셨으나 무심하게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시고 가시고 말았다. 의철 형수는 딸을 낳아 4,5년 동안 목메이도록 기다리다 결국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그 딸이 벌써 50세가 되었나 싶다. 지금도 이산가족 만남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행여나 하고 기대를 하여 보지만 살아서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너무도 희박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6·25로 인하여 막 피어오르는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보냈다. 이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다음은 내가 고향에 돌아와 동생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내가 듣던 대로 북괴 침략군은 1950년 7월하순경에 우리 고장인 전주를 점령하였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우리 마을 골목마다 인민군 선발대가 꽉 들어차 있더란다. 이들은 집집마다 나뉘어 들어가서 아침식사를 시켜 먹은 다음 밤새 잠 못자고 강행군하였기에 피로가 겹쳐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중 인민군 한 병사가 일어나서 뒷마루에 앉아 나의 동생(당시 전주사범 4학년생)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우리가 왜 이런 전쟁을 하며 고생을 해야 하는가? 이는 김일성과 이승만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새롭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같은 핏줄을 가진 민족으로서 왜 그러한 동족상잔의 비참한 전쟁을 하여 아물기에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받았을까? 이로 인하여 1,000만 이산가족이 생겼고, 요즘도 이산가족이 반세기 만에 만나서 통곡하는 것을 보지 않는가? 물론 세계 제2차 대전 후 미군과 소련군이 우리를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남과 북을 동시에 점령 끝내 38선을 경계선으로 분단이 되어 각각 독립국이 수립되었고 그 후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자본주의와 소위 농민 노동자를 위한다는 공산주의 사상의 대립으로 갈등이 심해졌었다. 하지만 오늘 날에는 구소련의 붕괴로 공산 이데올로기 사상이 말살 되어가고 점차 살기 좋고 자유로운 시장자본주의로의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의 분단의 책임이 외세에만 있다고 단언할 수 없으며 오히려 남과 북의 우리 자신 모두에게 잊지 않나 싶다. 당시 천진난만 했던 학생으로서 갑자기 불어 닥친 전화에 휩쓸려 그나마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다가 급기야는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갖은 고생을 하였으니 그리하여 지금껏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당시 학도병으로서 같이 참전하여 포로가 되어 죽을 고비를 수차례 겪고 돌아온 친구 병기, 병오 역시 나와 같이 줄곧 악몽에 시달려 왔으며, 그 후로도 거의 삶의 활기를 잃고 이 고장에서 농사일 이나 하며 거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가? 과거를 결코 잊을 수 없고 용납하기 힘들다. 하지만 잠시 남침 당시 우리 집에서 인민군 병사가 한 말을 음미해 보자. 이는 결코 그 한사람이 무심코 한 말이 아니고 남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6·25사변은 분명 북한에서 공산체제로의 적화 통일을 기도하여 일으킨 참화이므로, 전적으로 북한의 집권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제는 역사의 유물로 된 이데올로기로 인한 원한이나 싸움으로 우리의 자손에게 까지 불행하게 할 것인가. 동족상잔으로 인한 참혹함과 억울한 희생으로 잃었던 모든 것을 우리 대에서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 자손에게는 그러한 액운을 물려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와 더불어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던 친우 몇몇이 떳떳한 대한민국 군인으로 참전하여 불행이도 이내 북한 침략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UN군에 투항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생환하였다. 고의로 군에서 낙오한 것도 아니고 어찌할 수 없는 사정으로 한국 군인으로서 북한군에 생포되었다가 다시 도망쳐 나와 우리 군의 품으로 돌아 왔는데 포로 취급을 당하여 거제도 수용소에서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비참한 처우를 받게 된 것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 우리가 만약 미군이었다면 그렇게 처우 했을 것인가. 우리는 귀중한 일생을 거의 우리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였다. 그러나 국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보답이 있었는가?


  적화통일의 야욕에 찬 북한으로부터 불의의 남침을 받아 남북한 공히 수백만의 고귀한 인명 손실과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받은 후 3년이 지난 후에야 휴전이 되어 38선을 기준 동서가 약간씩 달라진 새로운 국경선으로 갈라진 채 원상태의 체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후 반세기 동안 우리 이남은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OECD 가맹국으로 까지 성장하였으나, 이북은 줄곧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이 경직된 체제 속에 세계에서 동정을 받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요즈음 젊은이, 어린이들이 불과 사오십년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와 낭비를 하며 인생을 구가하고 있지 않은가? 6·25사변 당시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받아 자유 대한이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수호되지 못하였다면 지금쯤 우리가 어떻게 이 풍요로움을 누리고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물론 6·25의 북한 침략으로부터 자유 대한을 수호 할 수 있었던 것은 UN군의 적극적인 참전 때문이었겠으나 그와 못지않게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천진난만한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내가 왜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였는지, 그것은 당시 우리 가족 나아가서 우리 국가를 위하여 당당하게 참전한 탓이였다고 자문자답해 본다. 그러나 좀더 크게 생각하여 이제는 무지 목매하게 어느 체제나 사상을 위하여 같은 민족이요 형제인 동포끼리 싸우는 일이 없이 하루 속히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 국가로서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분단국가가 되어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영특한 한민족으로서 통일 된 세계 일류 국가의 국민으로서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잘 살아 가야 한다. 그리고 모두 그렇게 염원하고 있다.


이 땅에 내내 주의 은총과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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