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목마당

散文

양희선 (양희봉 누이동생)

기차통학

가끔 기차여행을 할 때면 어린시절 기차통학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10여년을 기차로 통학했던 때가 많은 추억으로 남는다. 우리 집은 전주시내에서 10여리 떨어진 덕진이었다. 들녘에는 논과 밭이 풍요롭게 펼쳐져 있었고, 전주천 맑은 물이 한가로이 흐르는 곳이었다.앞동산의 솔밭냄새는 온 동네를 향기롭게 하고, 뒷동산은 아이들 놀이터여서 우리 마을은 온화하고 양지바른 마을이었다.

5,60년 전에는 자동차와 버스가 귀한 때여서 교통수단으로는 기차 뿐이었다. 전주역은 언제나 붐비는 집합장소였다.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 여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늘 시끌벅적하여 시장 속 같았다. 목판을 어깨에 멘 엿장수, 찹쌀떡을 파는 이들은 빈틈을 잘도 헤집고 다녔다. 시원한 물이 그리운 여름날, 아이들이 아이스케키 통을 깔고 앉아 아이스 케~키하고 목청껏 노래할 때 먹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여수에서 올라오는 완행열차는 장사들로 붐볐다. 미역, 멸치, 자반, 피문어, 새우 등을한 보따리씩 가득 안은 아주머니들의 억센 수다는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었다. 등하교 때에는 학생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차는 2,30분 연착하는 때가 많아서 지각하는 일도 있었으나 통학생에게는 특혜를 주었었다.

통근하는 직장인과 통학생들은 많은데 객차가 부족하여 통학차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마치 피난민을 가득 실은 열차처럼 매달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화물 칸에 탈 때도 있었고 뛰어내릴 때는 가냘픈 다리가 후들 거리고 무서웠다.

어느 날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사고가 났다. 덕진역 대참사였다. 내가 여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아침 등교시간에 기차가 연착되어 많은 학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가 홈에 서서히 들어오자 많은 학생들이 서로 먼저 타려고 밀치는 바람에 연약한 1학년 여학생 3명이 기차 바퀴 속으로 떠밀리고 말았다. 순간적인 일이라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여학생들은 영영 눈을 감아버렸다. 희망에 부푼 여린 꽃망울들이 미처 피지도 못한 채 꺾이고 만 것이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악몽같은 현실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후둘거려 어떻게 학교에 갔는지 모르겠다.

그 뒤 얼마 동안은 기차를 탈 수가 없어서 걸어다녔다. 시내를 벗어나면 신작로 양쪽은 모두 논이었다. 민가도 없는 길을 쓸쓸히 걸으면 금암동이 나왔다. 이제 반절쯤 왔나 생각하며 전주역을 향해 걸었다. 찌는 듯한 여름날엔 가로수의 그늘을 따라 더위를 피하며 걸었다. 냉혹한 추위엔 짐을 가득 실은 우마차 뒤를 졸졸 따라가면 북풍의 아린 바람을 조금은 막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외롭고 힘들 땐 시내에 사는 친구가 한없이 부러웠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방한복도 없었고, 따뜻한 양말이나 털장갑도 귀하여 손발이 트고, 얼음이 박히기도 했었다.

시대는 날로 발전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5,60년 전에는 인부들이 증기기관차 화통에 검은 석탄을 퍼 넣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도 기차화통에 받아 넣었다. 석탄으로 물을 끓여 증기의 팽창을 이용하여 왕복운동을 일으켜 동력을 얻어 달리는 게 기관차다. 디젤기관차에 비해 큰 힘이 없어 객차를 많이 이을 수가 없다. 지금은 디젤기관차로 기름을 태워 전기를 발생하게 하여 전기의 힘으로 간다. 간편하면서도 힘이 있기 때문에 수십 칸의 객차를 끌고 갈 수가 있다. 또한 선로는 어떠했는가. 옛날엔 단선으로 상하 행선의 교차 때문에 많은 배차를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복선과 복복선이 전국적으로 잘 되어 있어서 많은 열차를 배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명절 때는 임시열차를 배정하여 고향방문객들을 즐겁게 도와주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교통도 일일권세상이 되었다. 큰길만 나가면 버스가 줄을 잇고, 택시는 승객을 찾아다니는 세상이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필요에 따라 2,3대가 있기도 하다. 문화가 발달하면 상반된 폐단도 따르기 마련이다. 컴퓨터로 인해 시력이 약해지듯차를 타기 좋아하면 하체가 약해진다. 복된 시대에 태어난 행운아들은 한 정거장도 걸어 다니질 않는다. 편히 사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체격만 좋았지 체력이 부족하여 힘이 없다. 버스 한두 정거장은 걸어서 다니도록 우리 어른들이 솔선수범을 해야 할 것 같다. 체력단련에 힘쓸 일이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지 않던가.나이가 들어가도 때때로 기차통학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가난했지만 그때가 무척 그립다.

초 청 양희선 (양희봉 누이동생)

소양면 위봉산 자락 오성리에 사는 동생이 우리 형제분들을 초대 하였다. 사방이 꽃으로 단장된 산 풍경이 참 예뻐서 소풍 삼아 놀러 오라고 하며, 서울 오빠 내외도 초대를 하였다고 했다. 집에서 점심을 대접하는 것이 도리인줄 알면서도 편의상 집 근처에 있는 대통밥 1번지라는 음식집에 예약을 해 놓았으니 그곳에 1시까지 오라는 전화가 왔다. 여동생 내외와 우리 내외는 승용차로 함께갔다.

송광사 입구 벚꽃 나무는 꽃이 활짝 피어 꽃터널이 되어 아름다웠다. 떨어지는 눈꽃은 바람결에 휘날리어 눈 내리는 겨울 같았다. 콧 노래가 흥겹게 나오려는 것을 제랑이 운전하기에 참았다. 송광사를 지나 산길따라 오성리 대통밥 1번지에, 일행 중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하여 예약된 자리에 앉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자연 풍광이 아름답다. 산벚나무, 진달래가 곱게 물들고 개나리, 철쭉이 빛을 더하니 한폭의 산수화 같다. 잠시 후 서울 오빠 내외분과 우리 형제분 모두 11명이 만나 초청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대통밥도 나왔다. 대통밥은 큰 대나무를 잘라 깨끗이 씻은 다음 그 속에 쌀을 넣고 중탕으로 밥을 짓는 것이란다. 대나무 속에 들어있는 속껍질이 우리 몸에 좋다고 한다.

밥에 대나무 향이 배어 향기롭고 찰지며 맛있었다. 대나무 통은 한번 사용하고 버린다고 한다. 다시 사용해도 좋을듯한데 버린다고 하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하나 가지고 와서 필통으로 쓰고 있다. 식사 후 대나무차가 나왔다. 쌉싸롬 한 대나무 향이 입안 가득하다. 자연을 벗삼아 즐기는 식사는 일미였다.

식사를 끝내고 근처에 사는 동생집으로 왔다. 얼마전 만해도 잔 대밭으로 보였었는데 어느새 무척 굵어져 대나무 숲을 이루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그림같은 집이다. 제랑이 뒤뜰로 안내하여, 비치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대나무 밭에서 스쳐 오는 바람은 청정수와도 같다. 곱디고운 초록색 잔디에 멋있게 자란 소나무가 운치를 더 해주고 있다. 감나무, 배나무, 매실나무, 자두나무 등 온갖 유실수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은 누가 심지 않고 가꾸지 않았어도 양지 바른 곳이면 어김없이 어여쁜 꽃을 피우고 있다. 스스로 조화를 이루니 대자연의 섭리리라.

거실로 안내되었다. 거실 벽면이 2층까지 통 유리창으로 장식되어 밖의 아름다운산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봄 여름엔 아주 좋을것 같지만, 겨울철엔 쓸쓸할 것 같다. 부지런하고 야무진 동생은 어느새 준비한 후식을 내왔다. 떡, 과자, 딸기, 금귤, 참외 등 맛있는 음식과, 오미자차를 마시면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들만의 따뜻한 정이 서려 있다. 지혜로운 동생은 몸에 좋은 전통 한방 오미자차 한 봉지와, 머리를 자극하면 좋다는 박달나무로 만든 얼기빗을 선물로 안겨 주었다. 인정 많은 아우가 언제나 좋았고 자랑스럽다. 대접받고 선물까지 받아 고마웠다. 먼저 베풀면 곱으로 돌려받는 이치를 알면서도 선뜻 그리하지 못하는 아둔함을 깨우쳐야겠다.

7시에 고산 시골집에 저녁식사 예약이 되어서 5시쯤 집을 나와 구경하면서 가기로 했다. 위봉사에 왔다. 활짝 핀 벚꽃이 눈부시게 시선을 끌어 당긴다. 비구니 여승만 계시는 곳으로 조용하고 깨끗하며 경내가 넓다. 여승들은 일을 하는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다.

대웅전 밑 돌틈 사이로 가냘프게 핀 돌단풍 꽃이 애처롭게 보인다. 잠깐 머물면서 겉만 보고 나왔다. 운암산 산줄기와 상류에서 흐르는 물결따라 고산쪽을 향해갔다. 꽃으로 단장된 산과 들, 맑은공기, 흐르는 물은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추울까 더울까 호시절! 화창한 4월이다.

대아리 정상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대아정에 오르니 석양에 비치는땜 물은 잔잔한 바람에 고운 은빛으로 일렁이고 있다. 대아땜 물은 우리 농민들의 없어서는 안될 피와도 같은 물이다. 수목원에 가서 예쁜 꽃들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7시에 예약한 시골집에 도착했다. 고산 시골인데 상차림이 한식으로 깨끗하고 맛깔스런 음식이 차례대로 나왔다.

두릅, 더덕, 취, 쓴바위 김치, 제육볶음, 조기 찜, 홍삼합, 불고기 등 먹을 것이 많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점심을 먹고 간식을 많이 먹은 탓으로 아까운 음식을 남긴 것이 죄스러웠다. 마지막에 나온 들깨가루를 넣은 된장국과 토화 새우탕은 우리 어머니들이 좋아하는 고유의 음식이었다.

서울에서 오신 오빠 내외가 타고 갈 KTX 기차 시간이 되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언니는 언제나 따뜻한 정을 주며 오실 때도 선물을 챙겨서 오신다. 바른 예의를 실천으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리라.

정으로 다져진 우리 가족이 서로 아끼며 울타리가 되어 감싸면서 항상 기쁜소식 전해오길 바랄 뿐이다.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한 큰 올케 언니가 마음에 걸린다. 언제나 건강하고 즐겁게 웃으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