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목마당

散文

朴暾緖

말(言語)놀이의 즐거움

말의 기능은 첫째로 의사소통에 있지만 말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그 중에도 언어를 매개로 하는 유희 즉 말놀이(속된 표현으로 ‘말장난’)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종의 오락이다. 넓은 의미로 볼 때 말놀이도 일종의 의사소통이라 할 수 있겠다. 세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와 문헌에서 찾아본 몇 가지 말놀이의 예를 여기에 적어본다.

하나, 회문(回文)에 대하여

회문은 앞으로 읽거나 뒤로 읽거나 같은 말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 예를 들어본다.

낱말 :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옥상옥(屋上屋)

구(句) : 내 아내, 통술집 술통, 시집간 집시

문장 : 다들 잠들다, 소주 만병만 주소, 다시 합창합시다

영어의 예

RADAR

WAS IT A CAT I SAW? (내가 본 것이 고양이였냐?)

말놀이의 오락적 농도를 한 단계 높이면 다음과 같은 예도 들 수 있다.

( )지 만지자

( )지만 만지자

( )지만 또 만지자

( )는 독자가 알아서 채워 읽기 바란다.

원래 회문은 한시(漢詩)에서 평측운자(平仄韻字)를 위에서 읽으나 아래로 읽으나 같게 만든 것이라 한다. 한자 발음의 높낮이와 모음조화를 고려한 한시의 운율(韻律)을 평측운자라 한다. 이 운율을 위 아래 똑같게 만든 것에서 더 뜻이 확장되어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말이나 글이 되는 것까지도 회문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둘, 일곱 개의 쌍기역

우리말에, 자음이 쌍기역인 일곱 개의 재미있는 낱말이 있다. 또 공교롭게도 모두 한 글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 일곱 개의 낱말이 우리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필수적인 키워드라는 공통점이 있어 더욱 묘미가 있는 것이다. 특별한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가나다 순으로 나열해본다.

1. 깡

추진력·결단력·도전정신·대담성·불굴의 의지력 등을 말하는데 ‘깡’이라는 낱말은 사실은 사전에는 없다. 국어사전에는 ‘깡다구’가 나와 있는데 ‘억지스럽게 버티어 밀고 나가는 오기’라고 풀이하고 있다. ‘깡다구’가 줄어서 ‘깡’으로 쓰이는 것으로 본다.

2. 꼴

외모·체격·자세·복장 등 겉으로 보이는 사람의 생김새나 됨됨이를 말한다. 옛날에도 군자가 갖출 덕목으로 身言書判 네 가지를 들었다. 言은 언변, 書는 지식과 글씨 判은 판단력이라고 보고 身이 곧 ‘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3. 꾀

창의력·판단력·순발력 등 지적능력을 가리킨다. 사전적 의미로는 ‘일을 잘 꾸며내는 묘한 생각 또는 계책’이라고 매우 부정적으로 풀이되는데 여기서는 ‘꾀’를 그냥 ‘두뇌’라고 해석하고 꾀가 있는 사람을 머리 좋은 사람으로 보면 될 것 같다.

4. 꾼

전문성·직업정신·프로정신·장인정신 등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이 말도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여 사기꾼, 노름꾼, 난봉꾼 등 부도덕하거나 일꾼, 장사꾼, 사냥꾼 등 다소 비하하는 느낌이 드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꾼’은 자기 직업에서나 취미활동에서나 수월성을 가지고 일가를 이루는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5. 꿈

꿈은 이상이고 미래다. 현실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청사진이다. 여기 제시하는 일곱 개 어휘 중 가장 어감이 좋고 가장 긍정적인 뜻으로 쓰여온 낱말 같다.

6. 끈

끈은 네트웍이다. 요즘 세상은 NQ(Network Quotient)가 좌우한다고 한다. IQ(지능지수), EQ(감성지수), MQ(도덕지수) 등 여러 가지 지수가 사람의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로 쓰여진다고 하나 현재와 미래에는 촘촘하고 영양가 있는 네트웍 즉 NQ가 더 중요하다.

혈연·지연·학연 그 밖에 직장이나 군대에서의 인연 등을 활용해 많은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생존이나 성취에 큰 도움이 된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전제하에서 끈을 이용하는 것은 결코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강한 유대를 갖는 대표적 집단을 흔히 반 농담으로 ‘5출’이라고 하는데 호출·고출·이출·해출·알출(호남출신·고대출신·이대출신·해병출신·ROTC출신)이 그것이다. 정보를 공유하고 상부상조하는 것은 큰 미덕이지만 배타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말 사전에 ‘끈’의 세 번째 뜻으로 ‘의뢰할만한 연줄’, ‘살아가는 방도’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끈’은 정말 옛날부터 우리의 생존을 좌우한 중요 수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7. 끼

잘 놀기·예술적 예능적 소질·유머감각 등이라고 내 나름대로 정의해 본다(이 낱말도 사전에 없다). 쉽게 말해 노래 잘 하고 악기도 좀 다루며 춤 잘 추고 남 잘 웃기면 ‘끼’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패션감각까지 뛰어나면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옛날 말로는 풍류객(風流客)이 ‘끼’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보면 ‘끼’는 ‘멋’과도 일맥상통한다. ‘멋’은 ‘끼’보다 차원이 높아 은은하고 ‘끼’는 화끈하다고나 할까. ‘멋’은 풍기고 ‘끼’는 보이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서양사람들은 ‘섹시’하다는 말을 칭찬의 뜻으로 쓴다던데 다소 섹시한 것도 ‘끼’의 한 요소일 듯하다.

나는 이 일곱 개의 쌍기역 중 몇 개에나 해당이 될까, 또는 각각의 항목에 점수를 매긴다면 평균점은 얼마나 될까 되돌아보기도 한다.

셋, 다섯 가지 끈

일전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어느 모임에서 신임 회장의 ‘다섯 가지 끈’이라는 내용의 취임사를 인상 깊게 들었다.

하나는 ‘매끈’이다. 세련되게, 교양있게, 원활하게, 투명하게 회를 운영하겠다.

둘은 ‘질끈’이다. 다른 일에 한 눈 팔지 않고 눈을 질끈 감고 오직 이 모임만을 위해 봉사하겠다. 신발 끈과 허리띠도 질끈 매고 분발하겠다.

셋은 ‘발끈’이다. 바른 말 하고, 나설 때 나서고 고칠 건 고치는 성깔을 보여주겠다.

넷은 ‘화끈’이다.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 공격적으로 회를 이끌어 가겠다.

다섯은 ‘따끈’이다. 마음으로 배려하여 회원 상호간에 따뜻한 정이 통하는 화목한 모임을 지향하겠다.

‘일곱 개의 쌍기역’이나 ‘다섯 가지 끈’이나 똑같이 쌍기역이 들어간 낱말이다. 우리말의 된소리가 강하고 자극적이며 호소력 있는 낱말에 어울리는 탓일까. 언어학적으로 어느 종족의 언어든 된소리는 강한 표현에 쓰이는 것일까.

넷, 추어탕과 목욕탕

뜻이 다른데도 발음이 같은 말끼리 갖다붙여서 말놀이 하는 농담이 많다. ‘더울 때 먹어야 좋은 음식은 추어탕’ 하는 식이다. ‘추어’라는 생선 이름과 춥다는 뜻의 ‘추어(추워)’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임을 이용한 예이다. ‘김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이라는 퀴즈의 답은 목욕탕이다. 수증기의 ‘김’과 먹는 ‘김’의 짜맞춤이다. 이런 식의 조크는 무수히 많은데 영어로는 퍼닝(punning)이라 한다.

퍼닝의 예

애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춤은? 입맞춤

운전자가 가장 싫어하는 춤은? 우선 멈춤

신혼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곤충은? 잠자리

계란장사가 망하면? 알거지

창이 없는 구석에 자리 잡은 여자는? 창피한 여자

한 입 베문 사과를 영어로 하면? 파인애플

새끼 사슴의 영어 이름은? 아이디어

옛부터 전해오는 한문에 특히 퍼닝의 예가 많다. 그것은 상스런 말을 고상한 척 한자어로 포장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리라.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의 오언시(五言詩) 한 수.

書堂乃早知 서당은 일찍 알았는데

房中皆尊物 방안에는 모두 귀한 물건만 있더라.

生徒諸未十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先生來不謁 선생이 와도 인사도 안 하더라.

산골 훈장에게 김삿갓이 되게 박대를 당했는지 화가 나서 훈장을 야유하며 읊은 시이다. 독자는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우리 발음으로는 지독한 욕설이다. 乃早知(내조지), 皆尊物(개존물), 諸未十(제미십), 來不謁(내불알)이 얼마나 외설스러운 상말인가.

한문과 우리말을 짜맞춘 전통 퍼닝 또 하나. 옛날 어느 절에서 종이를 잘 만들었다. 한데 근처에 있는 어느 권력세가 양반집에서 툭하면 공짜로 종이를 수탈해가곤 했다. 그러던 중 또 족보 새로 만든다고 종이를 보내라는 전갈이 왔다. 절에서는 이제는 더 참을 수 없다고 거절 답장을 써 보낸 것이 다음과 같은 시 아닌 시이다.

本寺造紙 / 盡入貴門譜紙中 / 絶無餘力

직역하면 ‘우리 절에서 종이를 만들었는데 / 귀 문중 족보 종이 안에 다 들어갔소 / (이제 종이는) 끊어져서 여력이 없소.’ 이쯤 될 것이다. 이 절의 造紙(조지)가 당신 집안의 譜紙(보지)로 다 들어갔다니 이런 쌍욕이 어디 있는가. 絶無餘力(절무여력)도 ‘퍼닝’은 아니지만 ‘이제 정력이 다해서 더 해줄 수 없다’는 신랄한 야유이다. 육두문자를 유식한 한자로 둔갑시켜 권문세가에게 통렬한 보복을 한 것이다.

김삿갓의 풍자시(諷刺詩)에서 따왔음직한 현대판 한문 퍼닝도 있다. 어떤 여자가 인도어골프장에서 스윙연습을 하다가 어떻게 하면 실력이 빨리 느는가 프로골퍼에게 물었다. 프로는 종이에다 다음과 같이 써주었다.

自知는 晩知고 (스스로 알려면 늦게 알게 되고)

報知는 早知다 (남이 알려주면 빨리 알게 된다.)

즉 혼자 연습해봐야 골프 실력이 늘지 않으니 프로의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報’자는 ‘갚을 보’ ‘고할 보’이므로 여기서는 ‘고할 보’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술자리에서나 안주 삼아 지꺼릴 농지거리를 이 문집에 실어 14기 전체 동기생의 품위에 흠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부디 18세 이하 손주들에게는 읽히지 말 것). 이런 비속한 이야기를 쓴 것을 굳이 변명하자면 편집자의 글빚 독촉에 못 이겨 붓을 들었고, 붓을 드니 내 부전공인 유머학(?) 밖에는 독자의 흥미를 끌 주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바람은 읽고 나서 ‘이런 잡놈!’하고 욕이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뿐이다.

필자 주 : 김삿갓 시와 ‘절의 종이 이야기’는 다음 책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김열규, 《왜 사냐면, …웃지요》, 궁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