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목마당

散文

崔鐘國

어떤 友情

丁亥年도 다 지나간 12월의 세 번째 목요일, 삼성동 뒷골목 S일식집의 게이샤와 사군자 그림이 걸려있는 아담한 방에, 서로 절친하게 보이고 머리는 허연 늙은이들 다섯 명이 모였다.

그들은 1982년부터 종로 4가에 있던 구 전매청의 테니스코트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모여 테니스를 치면서 건강을 단련한 다음, 함께 뒷골목 음식점에서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우정을 다졌으며, 때로는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한 회한을 삭히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서로를 위로하던, 의기투합한 소위 ‘비상계획관’이란 직업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던 9명의 동기생들이 만든 모임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날도 매월 세 번째 목요일에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한 규칙에 따라 남아 있는 회원 다섯 명의 친구가 모였는데, 나를 포함해 박노균 이용건 이병석 박희득 동기들이다.

이 모임은 1985년 연말에 함께 테니스를 치던 이운중 동기가 “우리들이 지난 3년 동안 눈이 온 뒤에도, 영하 10도의 강추위에도 한결 같이 함께 테니스를 치며 우정을 다져 왔는데, 이 뜻 깊은 인연을 하나의 모임으로 승화 시켰으면 좋겠다”고 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다.

1985년12월의 어느 날, 정동 이화여고 뒤에 있는 버드나무집이라는 한옥 한식집에 그 동안 함께 테니스를 쳤던 박노균 이용건 이병석 이운중 홍현표 김재흠 이우권 박희득 최종국 등 9명의 동기들이 모였고, 모임의 이름과 목적 및 성격을 담은 회칙을 정하고, 초대 회장에는 테니스코트의 주인 격인 박노균 동기가 추대되었다. 그리고 모임의 이름도 ‘목요 테니스회’로 정했다. 정기적인 모임은 매월 세 번째 목요일에 모여 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였고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상부상조 하면서 등산, 운동 및 각종 오락을 통해 우의를 다지기로 하였다.

우리들은 우이동 버스 종점에 모여 도선사 뒤 깔닥고개를 넘어 백운대에 오르기도 하였고, 망월사를 지나 만장대를 넘는 ‘도봉산 종주’도 하였다. 성남시 은행동에서 남한산성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앞에 모여 관악산을 넘어 과천에서 감자탕을 먹으며 즐거운 담소로 건강한 하루를 보내기도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과 사도세자와 정조 임금님의 ‘융건릉’을 둘러 보며 역사 탐방을 한 다음, 김지종 동기의 후원으로 유명한 수원 갈비를 뜯기도 하였고, 강화도 마니산에 올라 ‘참성단’에 절하며 국토통일을 빈 다음 박완수 동기의 ‘온수리 젖소농장’에서 농장 경영의 노하우를 들으면서 담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멀리 이천과 여주의 도자기 전시장과 ‘신륵사’를 둘러 보고 난 다음 남한강변에서 쏘가리 매운탕을 먹으며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기도 하였다.

1980년대 초 종로4가의 뒷골목은 길게 늘어선 먹자골목이었는데, 판자집과 낡은 한옥으로 된 음식점 들은 저마다 특색있는 요리와 서비스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몇 집은 우리들의 취향에 맞아 자주가게 되었고 늦게까지 퍼질러 앉아 담론 할 수 있어 자주 들렀으니, 지금도 그때의 자유분방한 행태를 그리워한다. 테니스를 친 다음 늦은 아침을 먹으면, 당구를 치고 바둑을 두었다. 특히 나의 ‘우주류’(?)와 이용건 동기의 허점이 보이지 않는 탄탄한 바둑이 두어 질 때에는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관전의 재미를 더욱 즐겼다.

매월 세 번째 목요일에 모이는 정기모임에서는 교양을 높이기 위해 시사해설, 고전풀이, 고사성어풀이, 산수화의 이해, 붓글씨의 소개, 건강문제, 원예와 화훼, 음악 감상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해 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김재흠 동기의 고전풀이는 탁월했으며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이러는 동안에, 맨 먼저 내가 붓글씨를 시작하여 1997년에 붓글씨 ‘한문행초서’로, 2002년에는 문인화 ‘소나무’로 각각 국전에 입선하였다. 이병석 동기는 문인화를 시작하여 1995년에 서법예술대전에서 문인화 ‘포도’로 입선하였고, 지금은 붓글씨에 정진하고 있다. 박노균 동기와 이용건 동기는 ‘분재와 수석’에 심취 하였는데, 이용건 동기는 ‘한국원예협회’ 회원이 되었다. 또한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박희득 동기는 고급 오디오시스템을 설치하고 친구들의 귀를 즐겁게 하더니, 소형영화 촬영에 몰두하여 ‘소형영화 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하였다.

모임이 설립된 1년 후에 네 명의 동기들이 추가로 가입하여 총인원 13명이 되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섯 명은 탈퇴하였고, 또한 애석하게도 세 명은 유명을 달리 하였으니 한때는 모임의 돈독한 우정으로 동기생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이제는 다섯 명만의 작은 모임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 다섯 명의 우정은 아직도 친형제처럼 돈독하다.

‘목요 테니스회’는 동기회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모임이지만 지금까지 22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 이어왔다. 이제 몸은 늙어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여 신문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늙은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존경하고 신뢰하며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매월 세 번째 목요일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수원 매탄동 望祥軒에서